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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데스크] 노벨상과 `관치과학`

Eric-Yang 2011. 7. 7. 13:24
"기사 잘 봤습니다. 실제 정책에 반영이 되어 한국의 연구자들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 일관성을 가지고 집중할 수있는 환경이 될 것을 상상해보니 참 즐겁습니다. 이런 좋은 기획 많이 하셔서, 정말 연구하기 좋은 환경으로 이끌어주신다면 연구하는 사람의 하나로 너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미국 코넬의대에 있는 한국인 박사 연구원이 보내온 이메일 내용이다. 매일경제신문이 `노벨상 못타는 한국과학`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기획기사에 대한 코멘트였다. 또 다른 과학자는 "한국 과학계의 현주소와 문제점, 앞으로 나갈 방향을 잘 짚었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기사를 통해 드러난 국내 환경은 노벨과학상 수상과는 한참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상당수 과학자들이 유행을 좇아 수시로 연구주제를 바꿨고, 국책과제를 따러 밖으로 다니느라 툭하면 실험실을 비웠다. 박사급 연구원들은 실험실 관리에 과제 신청자료 작성, 강의준비까지 `잡일`의 연속이었다. 

젊은 과학자 양성도 말뿐이었다. `신진연구지원사업` 중 35세 미만 과학자에게 돌아간 것은 5%에 불과했다. 원로ㆍ중진 과학자가 거의 다 챙겨간 것이다. 한국 과학의 현실은 이렇게 뒤틀렸다. 한우물만 팔 수 있도록 연구환경을 만들어주는 선진국과는 대조적이다. 

노벨상 후보자로 거론되는 미국 록펠러대학 랄프 스타인만 박사는 바이러스나 세균을 잡는 파수꾼인 `수지상세포`만 30년 이상 파고들었다고 한다. 

그는 매경 기자에게 "20~30년간 필요한 시간만큼 오랫동안 지원받을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었다. 또 뛰어난 멘토(지도 교수)와 똑똑한 학생들이 있었기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기사가 나간 뒤 과학자들은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응용ㆍ개발연구 중심에서 기초연구로, 대형에서 소규모 연구로, 단기에서 장기 연구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문제의 뿌리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른바 `관치(官治)과학`이다. 

"관료들은 자리에 있는 동안 눈에 보이는 단기성과를 내보이기 위해 대형사업을 만들어냅니다. 이들은 친분 있는 교수나 출연연구소 간부급 연구원에 의존해 대형 국책과제를 기획하죠. 관료의 위임을 받은 과학자는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과제 내용을 짜게 됩니다. 대형사업단은 다 이런 식입니다. 사업단 밑에는 소규모 사업단들을 두는데, 여기에 참여하기 위해 과학자들 간에 치열한 경쟁이 일어납니다. 사실상, 대형과제 책임자 선정 단계부터 치열한 로비와 줄서기가 이어지는 셈이죠. 나이 50대의 사업단장은 3년+3년+2년 등 다단계 구조로 되어 있는 사업에서 다음 단계에 배정되는 예산이 깎이지 않도록 30대의 젊은 사무관에게 잘 보이려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경제개발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R&D 정책을 짜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선진국은 개발연구 비중이 많아야 20%인데 우리는 50%나 됩니다." 

문제점 지적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대안도 제시했다. 

"연구비 배분ㆍ관리 체계를 관료로부터 독립시켜야 합니다. 한국연구재단 등 국가 연구비 관리기관을 학계 중심으로 운영하고, 투명성 확보를 위해 철저한 감사를 해야 합니다. 대형사업단 중심의 연구비 배분은 대폭 줄이고, 개별 연구책임자의 창의력에 의존하는 1인 연구과제가 국책연구의 주류가 돼야 합니다. 또한 캐치업(catch-up) 방식의 중진국형 투자에서 벗어나 창조형으로 전환해야 하고요." 

이런 지적을 하면서도 과학자들은 특정 관료 또는 특정 과학자를 부도덕하거나 무능하다고 탓하지는 않았다. 공무원이 교수에게 줄서라고 한 적도 없고, 교수도 제자 같은 공무원에게 자존심 죽여가며 비위를 맞추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관료 주도로 모든 것이 이뤄지는 국가 R&D 정책 결정 시스템이 문제의 시작이고 끝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엘리트 공무원과 의욕에 찬 과학자를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에 빠져들게 하는 그런 시스템 말이다. 

[진성기 과학기술부장 goj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