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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70% 낙오 한국 교육… 자본주의 위기의 한 원인"

Eric-Yang 2011. 12. 5. 13:45

[chosun.com]
-안석배 기자, 김연주 기자-

2011.12.05 03:10 

[자본주의 4.0 제3부 교육에 답이 있다] [1] 북유럽의 인적자본 키우기―英 케임브리지大 장하준 교수 인터뷰
한국, 교육시스템 악화 - 60~70년대처럼 가난한 애들 '맨땅에 헤딩'式 성공 힘들어져, 기회 불균등 심해지면서 美·남유럽과 점점 비슷한 길
북유럽, 계층이동 잘돼 - 대학 나오지 않아도 좋은 직장서 일할 기회 많아, 실직해도 실업수당·재교육… '패자부활전' 무대 많이 갖춰

극심한 빈부격차와 사회갈등을 초래한 신자유주의를 비판해온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는 데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교육'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대학 졸업장이 목적인)교육 실상과는 달라야 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학생과 학부모에게 주어야 하고 공정한 룰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장 교수는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교육이 제대로 역할을 해 사회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국가는 북유럽의 스웨덴, 핀란드 등"이라며 "이 국가에서는 성장 환경이 좋지 않은 아이들도 교육을 통해 국가 사회의 중요한 인적자원으로 길러낸다"고 말했다.

―한국의 인적자본은 글로벌 차원에서 어느 수준인가.

"이공계 분야를 기준으로 보면 미국스위스 등 선진국과 비교해 기껏해야 60~70% 수준밖에 안되지 않겠나. 인적자원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하는 국가들은 모두 교육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필리핀나이지리아에서 영국에 유학 온 친구들 중에는 굉장히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자국(自國)의 교육시스템이 못 받쳐주니 외국으로 가는 것이다."

―교육 시스템이 나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열심히 하면 계층을 올라갈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사람들이 진짜 열심히 하는데 (교육 시스템이 나쁘면) 그게 막힌다. 가정환경이 안 좋은 애들이 '이런 거 해서 뭐하나'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그렇고, 우리나라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맨땅에 헤딩하듯이 열심히 해서 머리 좋은 애들이 노력하면 됐는데, 이제는 시스템 자체가 바뀌었다. 대학 가는 것도 돈이 있어야 된다."

―계층 이동에 있어서 북유럽과 미국의 차이점은 뭔가. 한국은 어디에 가깝나.

"북유럽 국가들은 계층 순환도가 제일 높다. 선진국 중 미국, 포르투갈이 제일 낮다. 한국은 옛날에는 북유럽에 가까웠는데 점점 미국 쪽에 가까워지고 있다. 북유럽이 계층 순환도가 높다는 것은 복지제도가 잘 돼있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보수 좋은 직장에서 의미있는 일을 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3.0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결국 잘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망하게 되어 있다. 공산주의 체제가 그래서 무너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기회의 불균등을 사회 시스템이 해소해줘야 한다. 또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너무 괴롭지 않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성공한 사람을 보상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패한 사람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으면 성공한 사람도 즐거운 게 아니다. 패자 부활전을 자꾸 만들어줘야 한다. 북유럽 복지 제도의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실직을 해도 정부로부터 실업 수당과 함께 교육을 받아 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북유럽 교육에는 꿈과 미래를 찾아갈 수 있는 ‘패자부활전’시스템이 잘 정착돼 있다”고 말했다. /정경렬 기자 krchung@chosun.com
―소득에 따른 기회 불균형이 사회에는 어떤 악영향을 끼치나.

"소득에 따라 교육 기회가 박탈되면 부모가 부유하지 않은 아이들은 아예 게임도 못하고 떨어져 나가게 된다. 사회 전체로 보면 인력풀을 100% 쓰지 않고 30%만 쓰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인적자원 활용을 잘하는 곳은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같은 나라들이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창의적인 인재를 키운다는 측면에서 무엇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가.

"지적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태도를 길러주는 것이다. '이게 창의적이다'라고 교사가 가르치는 것은 이미 창의적인 것이 아니다. 한국은 여전히 권위적인 문화가 있어 지적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을 곱게 안본다. 그런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창의성이 자라는데 한계가 있다. 또 집단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사회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창의성은 스티브 잡스 같은 개인만 있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도 개혁은 어떻게 해나가야 하나.

"모든 제도가 갑자기 바뀔 수는 없다. 긴 목표를 갖고 차근차근 가야 한다. '북유럽처럼 대학 안 가도 즐겁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목표를 갖고 가면서 대학 입시 제도, 직업 구조, 공공시스템 등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일제 시대 후 문자 해독률이 22%였던 나라(한국)가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교육을 많이 받는 나라가 됐다. 복지 제도를 통해 가난한 애들도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어른들에게도 패자 부활전을 만들어줘야 한다." 

☞ 자본주의 4.0 시대의 교육

‘자본주의 4.0’은 소프트웨어 버전(version)처럼 진화 단계에 따라 숫자를 붙일 때 네 번째에 해당하는 자본주의라는 뜻.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1.0),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1930년대 수정자본주의(2.0), 1970년대 말부터 시장의 자율과 무한 경쟁을 강조한 신자유주의(3.0)에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모색되고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자본주의이다. 성공한 사람이 더 큰 성공으로 나아가도록 장려하고, 낙오한 사람에겐 재기의 기회를 주면서 끌어안고 가고, 다수의 행복과 안정된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4.0 시대를 구현하려면 결국 교육이 핵심 해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자본주의 4.0 시대의 교육은 소득의 규모에 상관없이 개인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공정한 룰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길러진 인적자원들이 국가적·사회적 부가가치를 새롭게 창출해 내는 시스템을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