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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자녀의 재주·재능을 혼동하는 부모들이여, 얼치기 재주의 환상서 깨어나라

Eric-Yang 2013. 12. 28. 14:40

[Why] 자녀의 재주·재능을 혼동하는 부모들이여, 얼치기 재주의 환상서 깨어나라

  •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 입력 : 2013.12.28 03:02

    윗집 꼬마가 같은 피아노곡을 일 년째 치고 있다. 처음에는 풍 맞은 환자가 재활 훈련 삼아 건반을 두드리는 줄 알았다. 우연히 아파트 현관에서 만나 할아버지는 좀 어떠시니 물었더니 저희 집 할아버지 안 계시는데요? 한다.

    소생, 어쨌거나 명색이 교육자다. 뛰어 올라가 아이를 피아노에서 그만 해방시켜 주라고, 아니 아이에게서 피아노를 해방시켜 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아이에겐 시간의 낭비요, 주변에는 소음 민폐요, 피아노에는 보람 없는 마모다.

    우리나라 부모들, 자녀의 재능에 참 우호적이다. '애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의 2절인 셈인데 해악은 공부보다 더 심하다. 재능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삽화

    피아노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그걸로 계속 이야기를 풀어보자. 소생의 피아노 실력은 체르니 30번 수준이다. 지금 그렇다는 게 아니고 정점일 때 그랬다.

    그런데 악보를 볼 줄 모른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곡을 듣고 쳤기 때문이다.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했고 한 일 년 들으니 곡을 다 외울 수 있었다. 그 암기한 것을 피아노 건반에 되는 대로 옮겼다. 해서 피아노를 칠 때 소생의 운지는 거의 곡예에 가깝다. 이 얘기를 해주면 대단하다, 천부적이다 같은 반응이 나온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 정도는 그 계통에서는 재능이 아니라 잔재주로 분류된다. 원숭이 수준이란 말씀이다. 재능의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기간이 한 달로 줄거나 손가락이 제대로 레슨을 받은 듯 정상으로 돌아다녀야 한다. 영화 '아마데우스'에는 모차르트가 눈을 가린 채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휘파람을 불고 난리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악기 연주자에게 눈을 가리고 연주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재능이 있어야 한다. 재능의 영역에서 하수는 고수를 보지 못한다. 고수의 눈에는 하수가 빤히 내려다보인다.

    이렇게 어쭙잖은 글을 쓸 때마다 누군가 킥킥대고 웃을까 봐 등골이 서늘한 이유다. 재능은 노력과 경험의 바깥에 있다.

    80년대 초반 고교 기타의 지존이었던 신대철에게는 자리를 위협할 만한 라이벌이 있었다. 신성우 밴드의 리더인 이근상의 형, 이근형이다.

    초창기 김종서와 '작은 하늘'이라는 밴드를 하기도 했던 이근형은 국내에서 최초로 바로크 메탈(클래식에 기반을 둔 화려하고 현란한 빠른 기타 연주 스타일)의 '본좌'인 잉베이 말름스틴의 곡을 연주하여 명성을 얻었던 인물이다.

    이근형이 했던 고백이 기억난다. "대철이와 함께 기타를 치다 보면 어느 순간 연습만으로는 불가능한 기가 막힌 악절이 튀어나온다." 이근형에게 신대철은 악몽이었을 것이다. 재능이란 살리에리에게 모차르트가 그랬듯 누군가에게 악몽이어야 제격이다. 음악만 그럴까. 글쓰기도 그림 그리기도 영화나 사진도 마찬가지다.

    어설픈 재능으로 그 시장에 나갔다가는 압박과 스트레스로 간이 쪼그라들어 결국 제 명을 못 채운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이 재주를 재능과 혼동하지 않도록 타이르는 것이다. 자식들이 단명하지 않도록, 죽어도 그 길을 가야겠다 고집하여 가정의 화평을 얼치기 재주가 깨지 않도록.

    아 참, 꼬마 애가 치는 곡은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은혜가 넘쳐 좋기는 한데 4월에는 미치는 줄 알았고 8월에는 영화 OST라고 생각하고 들었으며 이제야 제철 분위기가 난다. 다가올 내년 봄을 생각하면 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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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2013.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