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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서울대 工大가 토로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기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ric-Yang 2015. 9. 22. 09:54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이 선진국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처지가 된 한국 산업 기술의 위기(危機)를 경고하는 책을 펴냈다. 이들은 반도체·디스플레이·조선 등 우리나라 대표 산업 분야를 전공한 교수들로 산학 협력을 하면서 산업 현장도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나서게 한 것은 우리 산업에 대한 절박한 위기감이다. 교수들은 우리 기업들이 선진국의 설계도를 모방·개량해서 제품을 만드는 데는 뛰어나지만 최초 설계도를 그려내는 역량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여기에 우리 산업의 핵심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가장 긴 다리인 인천대교는 일본·캐나다·영국 기술을 빌린 '껍데기만 국산'이다. 반도체 산업도 이미 정해진 규격이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비(非)메모리 분야는 점유율이 10%도 안 된다. 거의 모든 분야의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교수들은 우리가 창조 역량을 발휘하는 단계로 도약하지 못하면 얼마 안 가 중국에 추월당할 것이라고 보았다. "한국 산업은 지금까지 논문이나 특허처럼 공개된 정보를 보고 (선진국을) 따라잡아 왔지만 중국이 똑같은 방법으로 매우 빠르게 우리를 따라잡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기술 격차는 작년 1.4년으로 2010년의 2.5년보다 1년 넘게 좁혀졌다.

교수들은 "선진국들이 100년 걸려 쌓아온 기술을 중국은 10년 만에 10배 많은 연구를 진행하는 식으로 급속히 추격하고 있다"며 "이미 해양플랜트·자동차·가전·휴대전화 등 거의 전 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세계 최초 모델을 제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중국이 만든 최초 설계도를 받아 그대로 생산해서 중국에 납품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중국이 얻어낸 글로벌 기업의 노하우도 어느새 무시하지 못할 수준에 도달했다. 중국은 지난 5월 2025년 세계 제조업 2강(强) 대열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밝히고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 방향으로 산업 구조를 바꿔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미국·독일·일본 등 기존 제조업 강국들은 '첨단(尖端)'으로 대응하고 있다. 애플·구글·테슬라 등 미국 기업들은 이미 스마트폰, 무인차, 전기차, 3D프린터 등 새로운 제조 기술의 혁신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제조업 르네상스' 선언이 현실이 되고 있다. 독일은 2013년부터 제조업과 정보기술(IT)을 얽는 '인더스트리 4.0' 전략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은 이미 고부가가치 부품 소재 산업의 글로벌 기지가 돼있다.

선진국이 이미 개발한 범용(汎用) 제품들을 개량·조립하는 걸로는 중국을 이길 수 없다. 평범한 기술자들은 넘치지만 최고급 인재는 부족하다. 대학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연구가 아니라 공허한 일상에 잠겨 있다. 연구소들은 엄청난 연구비를 먹는 하마가 돼가고 있다. 정체될 때, 한계에 부딪혔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에게 없는 '창조적 개념 설계' 역량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밀어붙인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고 숙성시킬 때 비로소 확보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에 와 있다. 모두가 '과거의 한국형 성장 방정식이 끝났다'는 엄연한 사실을 빨리, 제대로 받아들이고 학교 교실과 연구소, 기업 현장, 정부가 근본부터 바뀌어 나가야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로 변화와 혁신을 반기고 실패를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20년, 30년 뒤를 봐야 하고 국민은 인내를 갖고 시행착오를 감내해야 한다. '한강의 기적'은 끝났다. 그러나 기적을 만든 DNA는 우리에게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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